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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숨쉬는 책장

거리두기를 배워간다



擊鼓催人命 (격고최인명)
回頭日欲斜 (회두일욕사)
黃泉無客店 (황천무객점)
今夜宿誰家 (금야숙수가)

울리는 저 북소리 이 내 목숨 재촉하는데
고개를 돌려보니 서산 해가 저무는구나
황천가는 길에는 객점하나 없다는데
오늘밤은 어느 집에서 묵고가리

    어린 시절 사육신의 전기에서 읽었던, 성삼문의 한문 시조 한 자락이다. 며칠전 지인들과의 만남 자리에서 돌아가며 시조나 한 자락씩 읊어보자는 누군가의 뜬금없는 제안을 듣고 불쑥 떠오른게 이 성삼문의 시조였다. 사육신으로서 단종에게 충성과 신의를 다하기 위해 수양대군을 몰아내려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사람, 그가 형장으로 가면서 읊었다는 이 시조는 어린 마음에 깊이 박혀와서 부러 외우려고 하지 않아도 끈덕지게 머리 속에서 떠나가지를 않았다.

    낭만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 이십대 시절에야 그럴듯한 시 몇자락을 읊어주어야 멋있는줄 알았고, 그래서 이 시 저 시 주억거리며 외우고 다닌 적도 있었다. 주로 정호승이나 이정하의 사랑 시들이었고, 어슴푸레 저녁놀이 질 때쯤 정호승의 '또 기다리는 편지'를 나지막히 읊조리면 나름 꽤 멋있는줄만 알았다. 그래서 주구장창 시를 외워보려 했는데 이게 또 암기가 쉽지 않았다. 마치 머리 속에 강물이라도 하나 흐르는 듯 시간의 물줄기 속에 쉽사리 쓸려가며 몽땅 잊어버리기 일수였다. 그런데도 어린시절 보았던 이 시조 한자락은 꽤 오랜 시간이 흘러도 끝끝내 남아서, 이십여년을 훌쩍 넘기는 세월을 머리 속에 자리잡고 떠날 줄을 몰랐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왜 이 시조 한 자락이 그렇게 오랜 시간 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던 것일까?

    자신이 옳다고 여긴 신념을 위하여 목숨을 걸줄 아는 사람, 그 때문에 자신 뿐 아니라 가족들의 목숨까지 모조리 빼앗겨야 했다. 실제 연좌제로 인해 성삼문의 가족들은 어린 세 아들들까지 모두 처형되었다. 사내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고 여인네들은 모두 노비가 되어야 하는 처참한 현실 속에서 죽음을 향하여 나아가는 마지막 길을 배웅하며 형틀에 묶여 끌려가는 자신의 뒤를 눈물로 뒤따르는 어린 딸을 바라보며 그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의가 짖밟히고 인의가 버림받은 몰상식의 시대 앞에서 과감하게 거부하는 몸짓으로 떨쳐 일어났던 그였지만, 막상 죽음을 향해 가는 그 길에서 그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것은 참 뜬금 없게도 서정적인 시조자락이었다는 것이 참 뜬금없었다.



    실제 그의 시조 중에는 신념과 절개를 드러내는 시조들도 있었다. 성상문이 죽음을 앞두고 지었다는 시조들은 이 외에도 여럿 더 있는데 대부분 임금을 향한 자신의 절개를 잘 드러내주는 기백어린 시들이었다. 아래의 시도 마찬가지였는데, 이 시에서 현릉이란 문종이 묻혀있는 능을 말한다. 단종의 아버지 문종이 요절하기 직전에 성삼문 등에게 어린 단종을 부탁하였는데 그 부탁을 잘 따르지 못하는 절탄이 절절이 드러나는 시조이다.

食人之食衣人衣 (식인지식의인의)
素志平生莫有違
  (소지평생막유위)
一死固知忠義在 
(일사고지충의재)
 顯陵松栢夢依依  (현릉송백몽의의)

임의 밥을 먹으며 입의 옷을 입으며
한 평생 마음 변함없이 살 줄 알았더니
이 죽음이 충과 의를 위함이니
현릉의 푸른 송백 꿈 속에선들 잊으리

 
    이 시조 역시 어린 시절 내가 읽었던 그 책에 함께 실려 있었고 또 함께 외운 것이건만, 내 마음을 잡아 끄는 것은 이런 비장한 시보다는 죽음을 앞둔 시간에 담담하면서도 서정적인 심사를 드러내었던 앞의 시조였다. 시인(詩人)은 천상 관찰자의 숙명을 타고 났음이다. 사물을 지근거리에서 바라보기도 하지만 때로 먼 거리를 유지한채  아무런 감정 없이 사물을 노래하기도 하는 것이 시인이다. 그래서 자기 감정이 줄기 줄기 드러나는 시보다는 담담하게 거리를 둔채로 한 줄 문장 안에 만가지 심사를 담은 시가 더욱 빛나는 가치를 지니는 법이다. 그래서 성삼문의 이 시조는 죽음 앞에서, 폭력 앞에서 거리를 둔 채로 죽음을 노래하고 있기에 더욱 나를 끌어당겼던 것 같다.

    한참 피가 뜨거웠던 시절, 나를 붙드는 신념 하나에 모든 것을 걸 수 있었던, 끝간데 없이 치닫기만 했던 스무살 무렵에는 내 목숨 따위를 걸만한 일들이 참 많이 있었다. 밤을 새워 끄적거린 연서 한장을 고이 품었다가 읽어주고 싶던 여자도 있었고, 내 어린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정의도 합리도 없던 기성세대의 모순된 세상도 있었고, 마지막까지 붙들고 밤새워 기도하던 신앙의 눈물도 있었다. 그래서 받아들여지지 못한 사랑에 가슴 시렸고, 온 몸으로 부딪혀도 달라지지 않는 세상에 절망했으며, 남들이 들어주지 않는 복음에 애가 탔었다.
   
    그래서 그무렵엔 도저히 '거리두기'를 할 줄 몰랐다. 사랑 앞에, 사람 앞에, 거리에 핀 풀 한포기에도 나는 지나치게 몰두했었고 결국 나의 시마저도 정제되지 못한, 여물지 못한 감정의 편린들이 줄기 줄기 흘러나오곤 했다. 그런 단지 감상의 뇌까림에 지나지 않을 시도 아닌 시들을 끄적거리는 일이 결국에는 한없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고 결국 다시는 시를 쓰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또 시를 끄적거리는, 사랑하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또 누군가에게 마음을 건네는 일들만 한없이 되풀이하며 스물 즈음의 날들을 흘려보냈다.

    길었던 방황의 터널을 지나 나이에 'ㄴ'자가 붙어 서른이 되었을 때에야 나는, 비로소 내 안에 뜨거움이란 단어가 식어 버렸음을 알 수 있었다. 더이상 사랑에 가슴 졸이지 않는, 세상에 맞부딪치기 보다는 멀찌감치 돌아가는 나를 보게 되었다. 한없이 치닫기만하던 사랑은 이내 내 심장에 무수한 상채기들만 남겨버렸고, 그 상채기들로 감정의 핏줄기마저 다 흘려보낸 나의 심장은 이제 점점 굳어간다. 그리고 서서히 나도 '거리두기'를 배워가기 시작한다.

    점점 굳어가는 마음이 더 선연하게 느껴질 때면 문득 문득 대학시절 읖조리고 다니던 정호승의 시 '봄 날'을 떠올리곤 한다. 사랑으로 밤새워 끄적거렸던 사랑 노래들도, 밤새워 벗들과 세상을 안주삼아 펼치던 고담준론들도 모두 새 한마리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옮겨가듯 세월이란 흐름 속에 지워져갈 뿐이었다. 내가 몸부림치지 않아도 세상은 스스로 아름다웠다. 이제 그 날의 시리던 마음들은 추억이라는 옷으로 갈아 입은 채 새로운 계절 속에서 그저 아름답게 기억될 뿐이다. 눈물 나게 보고 싶던 사람들도, 죽이고 싶도록 미웠던 사람들도 모두 단지 아름다웠을 뿐이다.

    세상에 온 몸으로 맞섰던 그러나 한편으로는 죽음과 거리를 둘 줄도 알았던 시인 성삼문, 봄 날처럼 언제나 새로운 계절은 돌아오기 마련이건만, 그처럼 살기 보다는 그처럼 죽고 싶었던 치기어린 스무살 청년은 어느새 서른줄을 넘겨버렸고, 아직도 세상과의 적당한 거리두기가 어설프다.그래도 여전히 아름다운 날들이기에 그 아름다움을 위해 살고 또 죽을수도 있으리라.



봄   날 

                                                          -정호승-

 내 목숨을 버리지 않아도
친지에 냉이꽃은 하얗게 피었습니다

그 아무도 자기의 목숨을 버리지 않아도
천지는 개동백꽃으로 붉게 물들었습니다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무심코 새 한마리가 자리를 옮겨가는 동안

 우리들 인생도 어느새 날이 저물고
까치집도 비에 젖는 밤이 계속되었습니다 

내 무덤가 나뭇가지 위에 앉은
새들의 새똥이 아름다운 봄날이 되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보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이 더 아름다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