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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숨쉬는 책장

섬김의 낮은 리더십

초등학교 시절 주번이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6학년 중에서 열댓명씩 한 팀을 이루어, 보름 동안 한 시간 정도 일찍 등교하여 학교 전체를 청소하고 교문에서 친구들을 맞이하는 역할이었지요. 6학년 때 선생님들은 나를 참 많이 예뻐 해 주셨고, 덕분에 나는 주번들의 팀장인 주번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내가 주번장인 것이 싫었던 것 같습니다. 나를 주번장으로 인정해 주지 않았고, 아무도 내 지시를 따르지 않더군요. 물론 선생님의 편애를 시기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나의 무능함이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친구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나는, 다른 주번들보다 30분씩 일찍 등교하기로 했습니다. 30분 일찍 등교해서 빗자루와 쓰레받이등 청소도구를 미리 챙겨 놓고, 다들 하기 싫어하는 궂은 일들을 미리 해놓았습니다. 그러기를 며칠이 지나자 친구들은 점점 내 말을 따르기 시작하더군요. 비로소 나는 진짜 주번장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시중 서점에 나가보면, 리더십 관련 서적은 소위 쏟아질 듯 나오고 있습니다. 누구나 리더십과 경영에 관하여 관심을 갖고 있고, 또 너도나도 리더십 관련 서적들을 읽고 있습니다. 굳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해도, 리더십이라는 말에 누구나 호감을 느끼고 또 관심을 갖습니다. 많은 이들이 직장과 사회에서 리더의 위치에 있고 싶어합니다.

이런 현상은 소위 기독 청년들 사이에서 더욱 심하게 나타납니다. 그들 대부분은 교회나 선교단체에서 활동하며 조직 경험을 하고, 또 때로는 임원으로 조직을 섬기는 리더의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요즈음 한국교회는 새로운 리더십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지난 세기 한국교회는 일부 스타 목회자들에 의해 주도되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그들 대부분이 은퇴할 나이가 되었고, 그들이 이끌던 일부 대형교회의 세습과 비리문제가 불거지면서, 이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요구가 더욱 강해졌습니다. 21세기에는 어떤 리더쉽이 한국교회를 이끌어야 할까요?

리더십은 구성원들이 인정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국민이 인정하지 않는 국가 권력은 그 권력의 정당성을 잃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구성원이 인정하지 않는 리더는 참된 리더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강제로 윽박지르지 않는 이상 아무도 그의 말을 따르지 않을 것이고, 그가 아무리 마이크로 목청껏 소리친다고 해도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내가 주번장이었을 때, 다른 주번들이 나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아무도 나의 지시에 따르지 않았고 나는 무능력한 주번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번들이 나를 인정하게 되면서 그들은 나의 지시를 따르기 시작했고 우리 팀은 아주 훌륭하게 맡은 일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리더십은 하나님으로 부터 나오는 것이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쓰시는 많은 인물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중에서 특히 사울에 대하여 주목하고 싶습니다. 왕이 없던 이스라엘 백성은 사사 시대의 혼란을 겪으며 스스로 지도력의 부재를 느끼게 되고, 왕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요구를 들으시고, 사울을 선택하여 왕으로 삼으시지요. 사울의 통치 초기 사울은 하나님의 착한 종이었고 백성들의 좋은 왕이었습니다. 출전하는 전쟁마다 항상 승리하였고, 모든 백성은 사울을 칭송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자 그는 참으로 비참한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대로 따르지 않았고 자신의 뜻대로 행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를 버렸고 악신이 들려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이 다윗에게 있음을 질투하여 다윗을 죽이려고도 하였습니다. 결국엔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자살하고 말지요.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은 리더십은 이처럼 구성원들의 인정도, 조직의 발전도 가져올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구성원이 인정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리더십은 어떤 것일까요? 김남준 목사는 예비 목회자들을 위한 저서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에서 세례요한의 성결을 이야기 하며, 21세기 목회자가 갖추어야 할 우선 덕목은 성결을 이라고 강조합니다. 시대의 패악과 단절하여 광야에서 생활하며 메뚜기와 석청만으로 살아가던 세례 요한의 강인한 성결이야말로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사람들은 비리에 찌든 리더들에게 지쳐왔습니다. 돈이 아니고서는 될 수 없는 정치가, 돈에 움직이는 한국교회와 지도자들에게 시달려온 사람들은, 이제 깨끗하고 투명한 리더십을 원하고 있습니다. 각종 비리 기사를 쏟아놓는 정치 지도자들 보다 오랜 세월 인고 속에 깨끗함을 지키며 고통 받는 사람들을 섬겨 온  이들이 더욱 존경 받습니다.

리더는 구성원들 앞에서 자신의 삶에 있어 떳떳할 수 있어야 합니다. 리더가 남보다 뛰어나야 할 점이라면, 그것은 개인적인 능력이 아니라 삶의 성결입니다. 특히나 종교단체인 한국 교회의 리더십이야말로 하나님을 중심에 둔 성결에 있음을 백번 강조해도 모자랄 것입니다.

<권력 없는 리더십은 가능한가?> 라는 책에서, 저자 맥스 드프리는 섬기는리더십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리더란 상명하복식의 군사적인 명령자가 아닌, 개인과 조직의 잠재력을 실현 시켜 주는 섬김의 리더십을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17절의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회계할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는 말씀이 이와 같습니다. 자신의 이해가 달린 문제에 신경을 쓰듯이 구성원들을 위해 애쓰며,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로 구성원을 돌보는 사람이야말로  인도자 즉 리더라는 말입니다.

리더는 구성원들을 자기 자신처럼 아끼고 그들의 잠재력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섬기는 사람입니다. 단지 남보다 능력이 뛰어나고 남보다 뭔가가 나은 사람이기에 리더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사랑하고 섬길 줄 알아야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리더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문둥병자 앞에서, 소경 앞에서, 남편을 다섯이나 둔 수가성 여인 앞에서, 늘 그들의 마음을 알아 주고 그들을 사랑해준 친구였습니다. 또 그분은 제자들을 너무나 사랑하셨고, 그 사랑이 넘쳐 제자들의 발까지 씻어주신 분입니다. 그 분의 이런 섬김의 모습 이야말로 바로 진정한 리더십의 모범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인도 아래 무능하고 무식하던 갈릴리 어부들이 전 세계를 움직인 사도가 되었음을 유심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일본 작가 도몬 후유지는 소설 <불씨>에서, '개혁'에 관해 누구 보다도 탁월한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개혁이란 반대자들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경제를 더욱 살찌우게 하는 것이다." 이 말은 개혁이란 누군가를 몰아내거나 누르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에게 더 나은 환경, 더 나은 사회을 안겨주기 위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숱한 권력의 암투와 반대자들의 정치적 음모 속에서도 백성들을 섬기고 위하는 개혁을 잊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불씨같은 개혁이었지만 작은 사랑의 불씨를 일으켜 한 사람 또 한 사람씩 많은 사람에게 불씨를 옮겨서 결국 개혁의 큰 불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 따뜻한 불씨는 정치적 반대자들에게까지 옮겨 붙었고, 결국 모두가 함께하는 새 사회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개혁이 필요한 시대, 이제 더 이상 뛰어난 한 사람이 남보다 나은 능력으로 이끌어가던 카리스마형 개인 리더십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리더는 남보다 뛰어나서 남을 누르는 사람이 아니라, 구성원을 사랑으로 보살피며 따뜻한 가슴으로 안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영적 지도자의 비전을 키워가는 기독 청년들 이라면 남보다 뛰어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리더십 이론 공부만 할 것이 아니라, 우선 낮아지는 연습부터 해야 합니다. 자신을 깨고 또 깨는 성결과 따뜻하게 안아 줄 수 있는 섬김의 훈련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고 구성원들이 인정하는 리더쉽을 훈련해야 합니다. '성결'과 '섬김'이야 말로 21세기 새로운 리더쉽의 패러다임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시대의 리더십은 서울 대학교나 으리으리한 대형 교회의 리더십 세미나에서가 아니라 가장 어둡고 아무도 보지 않는 구석진 곳에서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따뜻한 손목에서 나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