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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숨쉬는 책장

아날로그 라이프를 기억하며



    1년여를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던 넷북 하드가 그만 어제 숨을 멈추었다. 컴퓨터 안에 있는 각종 자료들을 열어보지도 못하고, 심지어 인터넷으로 월드컵 소식도 찾아보지 못하는 답답함에 하루종일 넷북을 뜯어보고, 포맷하고 다시 까는 소동 끝에 겨우 되살려 내었지만, 그만 그간 모아둔 각종 자료와 프로그램, 유틸리티들이 몽땅 사라져버렸다. 하루를 꼬박 보낸 소동 끝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인터넷을 사용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인터넷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조금이라도 궁금한 일들은 검색엔진을 통해 해결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게 되었다. 대학에 처음 입학했던 90년대 중반만 해도 컴퓨터의 사용이 지금같지 않았다. 리포트 용지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보고서를 검은색 테이프로 둘둘 말던 이야기, 수강신청을 하기 위해 밤을 새워 교학처 앞에 줄을 섰다가 수강신청 안내 책자를 뒤적여 가며 4각으로 잘라난 쪽지들을 들고 발을 동동 구르던 이야기 들은 인터넷 사용에 익숙한 지금 대학생들에겐 낯선 이야기일 것이다. 처음 PC 통신을 접했던 시절, 전화접속 모뎀을 통해서 1M 짜리 파일 하나 받으려고 몇 시간을 기다리며, PC통신 때문에 전화통화를 하지 못하는 가족들 눈치를 봐야 했던 때였다. PC 통신을 하면서 처음 PPP 접속으로 인터넷에 들어가 보고, 이메일이라는 것을 만들어 보고는 학교 후배들에게 무용담처럼 자랑하던 이야기들은 인터넷으로 고화질 동영상을 즐겨보는 요즈음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 같을 뿐일게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도,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살았고, 웃었으며 또 즐거워 했었음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렸다.

    그 인터넷 없던 시절을 살았던 이들, 가령 나와 같은 90년대 중반 학번들이 군 시절을 보내고, 대학에 속속 복학했던 2천년대 초반, 군에서 보낸 3년 사이에 전혀 달라진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리포트는 컴퓨터로 프린트해서 제출하고, 수강신청은 인터넷으로만 받았다. VT 기반의 파란 PC 통신 화면들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고, 전화번호 주고 받듯이 이메일 주소를 주고 받는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리포트 제출을 위해서 도서관 책들을 뒤적거리던 선배들은 모두 졸업해 버렸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자료를 긁어다 짜깁기 하는 후배들이 대학을 차지하고 있었다. 시험 족보나 필기 노트를 복사하기 위해 공부 잘하는 선배들에게 기웃거리던 모습은 사라지고, 이제 파일로 된 수업 자료들을 주고 받는 세상이 되었다. 그만큼 너무 쉽고 빠르게 세상이 변해버렸다. 변해버린 세상에 놀라서 어안이 벙벙했던 동기들도 하나 둘 이 인터넷 세상에 적응해 버리고 난뒤엔 정말로 이전의 삶은 우리네 기억 저 너머로 날아가 버렸다.

    그렇게 변하는 것은 본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데 광적인 집착이 있는 관계로 어느 교회 주보, 어느 회사의 홍보지, 강의 자료등까지 모조리 스크랩하거나 파일에 철해 두고는 서재에 잔뜩 쌓아두는 일이 많았다. 지금도 내 서재 한 구석에 가득찬 이 자료 꾸러미들을 다시 들춰보면 새삼스럽고 귀중한 자료들도 참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날인가부터 이 자료 꾸러미를 더 이상 모으지 않게 되었다. 대신 노트북 안의 폴더 안에 디지털 파일로 변환되어 1기가니 2기가니 하는 용량으로 모여질 뿐이었다. 이전처럼 꾸깃꾸깃한 자료를 바르게 펴서 스크랩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편하게 자료를 모을수 있었고, 가득 싸인 종이 뭉치를 뒤져서 자료를 찾아낼 필요 없이 폴더 검색만으로 순식간에 원하는 자료를 찾을 수 있는 편리함이 있었다. 그렇게 노트북과 인터넷의 편리함에 익숙해져 갔다. 공부를 할 때에도 취미생활 중에도 이 노트북과 인터넷에 의존하는 일이 많아졌다. 대학원 강의 때에도 노트북으로 사전 프로그램과 유틸리티들을 띄워 놓고 중간 중간 많은 도움을 받는다. 순간 순간 머리 속을 떠돌아 다니는 궁금증은 쉽게 인터넷 검색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노트북의 수명이었다. 워낙 물건을 험하게 다루는 칠칠치 못한 성격 탓에 이 노트북의 수명이 채 일이년을 넘지 못하는 것이다. 하드라도 날라가는 날에는 그 안에 담겨 있던 수 많은 자료들이 함께 사라지는 것이었다. 일이년간 꾸준히 모아 놓은 자료들은 방대한 양이어서 그 자료들을 다시 복구하는데 걸리는 노력과 시간은 쉽사리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처음 한 두 번 그 고초를 겪은 후에는 자연스레 정기적으로 자료들을 백업해 두는 습관이 들었다. 자료들을 집어 넣은 CD들이 수십개가 늘어갈 무렵이 되어 이젠 노트북을 서재에 팽개쳐 두고 넷북을 손에 들게 되었다. ODD가 없는 넷북의 특성상 자료 백업이라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하드 파티션을 나눠서 D 폴더 안에 대부분 자료들을 모아두었지만, 간혹 편의성과 시간절약을 위해 바탕화면에 올려둔 자료들도 꽤 되었다. 그리고 그런일들이 결국 어제처럼 날아간 하드와 함께 숱한 자료들을 잃어버리게 만든 것이다.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는 편리함이 때로 의외의 문제를 불러 일으킬 때가 있다. 핸드폰에 저장된 친구들의 전화번호 덕에 더 이상 전화번호를 외우지 않는 습관도 생겼다. 몇해전인가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반년 정도를 생활하다 돌아온 날, 이 습관이 가져온 문제에 직면한 적이 있다. 카자흐스탄 생활 중에는 당연히 핸드폰을 사용할 수 없었고, 중요한 전화번호들은 수첩에 옮겨 적어두고 있었는데 그만 돌아오기 직전에 이 수첩을 분실한 것이다. 그런데 인천공항에서 나를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기로한 친구들과 후배들이 인천공항에 와 있지 않았고, 그네들을 찾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전화할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기억나는 전화번호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한시간여를 발을 동동 구르다가 문득 생각난 번호 하나, 아직 핸드폰을 사용하기 이전, 한참 삐삐를 들고다니던 그 시절에, 머리 속에 저장해 두었던 친구녀석 집 전화 번호였다. 친구가 집에 있을리 만무했지만 기억난 번호가 그 하나라 무작정 전화를 해서 부모님께 친구 핸드폰 번호를 여쭈었고, 그 덕에 간신히 통화할 수 있게 되었다. 너무 익숙한 문명의 이기덕에 잃어버린 것들의 한 단면이었다.                                                                 

  
   가끔 살아가다 생각나지 않는 기억이 있다. 낮익은 누군가를 만났는데, 그 사람이 기억나지 않을 때, 머리 속에 검색엔진이라도 하나 있으면 금방 그 기억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아무리 기억하려 애를 써봐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기억, 머거리에서 숨어 있을 것 같은 그 기억을 꺼내주는 머릿속 검색엔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직은 젊은 나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노화가 머리 속부터 오는 것인지 건망증이 한참 심해지고 있으니, 이런 바램은 더욱 짙어만 지고 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쉽게 검색엔진으로 자료를 찾는 편리함에 빠져 어쩌면 나는 자료를 찾는 즐거움을 잊어버린 것이 아닐까? 가득 쌓인 종이들을 하나 하나 들춰보면서 새삼 발견하는 옛 자료들에 설레기도 하고, 도서관 한 귀퉁이에 숨어서 낡은 책종이들에서 나는 향기를 맡던 그 즐거움들을 어느새 잊어버리고 살아온듯하다.



    가끔은 핸드폰 전원을 꺼버릴 필요가 있다. 가끔은 노트북을 집에 두고 길을 나설 필요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전화번호를 머리 속으로 계속 되내이며 외워볼 필요가 있고, 때론 도서관이나 서점 한 귀퉁이에 웅크리고 앉아 종이 속으로 머리를 묻어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지나온 기억 어느 즈음에 두고 돌아서버린, 잃어버린 시절의 이야기들을 찾을 수 있다면, 갖가지 디지털 이기들 속에 파묻힌 우리네 골치아픈 머리도 가끔은 아날로그의 청량한 바람을 쐬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