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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숨쉬는 책장

양소유가 사랑한 여인은?


내가 구운몽을 처음 접한 것은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이었습니다. 이제 갖 사랑이 뭔지 궁금해지기 시작할 사춘기 무렵의 소년에게 구운몽의 여덟가지 사랑 이야기는 며칠밤을 새우며 읽어낼 정도로 부럽고 가슴떨리는 이야기였지요. 진채봉과 사랑을 나누는 시 '양류사', 양소유가 변장하고 정경패를 만나는 장면 같은 내용들은 읽고 또 읽어도 도저히 가시지 않는 여운이 있었습니다. 

대학시절 구운몽에 관하여 발제를 한 적이 있습니다. 어린시절부터 내 고전문학 탐독의 첫 시작과 같은 책이 구운몽이었기에, 학기초 발제를 정할 때부터 당연히 구운몽을 하겠노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였지요. 내가 얼마나 구운몽을 좋아했는지 잘 아시던 신동흔 선생님께서 감사하게도 제게 구운몽 발제를 맏겨 주셨습니다. 

그때 나는 구운몽을 처음 읽었던 중학생 시절의 눈으로 되돌아 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진짜 문학을 감상한다는 것은 몇편의 논문을 짜깁기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조리며 읽는 어린 감수성에 있다고 강하게 믿으면서 이 발제문을 준비했었지요. 덕분에 다른 여러 이야기는 생략된채, 양소유와 여덟 여인의 사랑 이야기에만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어이가 없기도 합니다. 대학 강의 시간에 이런 따위의 발제를 했었다니요. 신경 써주셔서 구운몽 발제를 맏겨주셨던 신동흔 선생님이나, 같은 클래스에 참여했던 학우들에게 이런 황당 발제로 인해서 무척 미안해지기도 하네요.




"불멸의 연인"이라는 영화가 있다. 음악가 베토벤이 죽은 뒤에, 베토벤이 정말로 사랑했던 불멸의 연인이 누구인지, 그의 삶과 사랑 이야기를 돌아보며 추적해가는 영화였다. 이 영화 의 방식을 차용해서, 양소유의 일생과 사랑을 추적하며 양소유의 사랑 방식과 그가 정말로 사랑했던 사람은 누구였는가를 주제로 삼기로 했다. 

이를 위하여 주인공 성진 양소유와 여덟명의 여인의 캐릭터를 먼저 살펴보아 이들의 성격이 어떠하였는지를 밝혀 그들의 사랑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1. 성진, 양소유

- 성진 -
일대기 : 남악 형성 연화봉에 서역으로부터 불교를 전하려 온 육관대사가 법당을 짓고 불법을 베풀었는데, 동정호의 용왕도 참석하였다. 이에 육관대사는 제자 성진(性眞)을 보내 용왕에게 사례하도록 했는데, 용왕의 술대접을 받고 돌아오던 성신은 형산 선녀 위부인의 팔 선녀와 석교에서 만나 서로 희롱한다. 선방(禪房)에 돌아온 성진은 팔 선녀의 미모에 도취되어 불문(佛門)의 적막함에 회의를 느끼고 속세의 부귀 영화를 원하다가 팔 선녀와 함께 인간 세상으로 추방된다. 후에 인생을 마치고 귀환한다.

- 양소유 -
일대기 : 희남 수주현 양처사의 아들로 태어난 양소유는 16세에 과거에 장원급제하였고 한림학사로 있을 때, 글로써 조와 위를 굴복 시켰고, 연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연왕을 직접 만나 역시 굴복시켰다. 이공으로 예부상서에 까지 올랐다. 토번이 난을 일으키자, 대원수가 되어 이를 물리치고 승상에 오른다. 

-> 사랑 이야기를 뺀 양소유의 삶은 별다른 굴곡 없이 평탄하고 재미 없는 삶이었다.

인물됨 : - 두진인의 증언
"양선생의 눈썹이 매우 빼어나 귀앞머리를 향하였으니 응당 벼슬이 삼태(三台)에 오를 것이요, 귓둘래가 구슬 같고 희기가 분칠한 듯하니 이름이 천하에 들릴 것이요, 권세의 골격이 얼굴에 갇그하니 군병을 잡은 위력으로 사방의 오랑캐를 진정시킬 것이오, 만리의 땅에 봉후할 것이니 백 가지 일에 흠이 없을 것 입니다."

2. 여덟 여인

  1) 진채봉 - 제 3부인 

특징 :진채봉은 양소유의 첫사랑이라고 할수 있다. 화주 진어사의 딸로서, 글 솜씨가 뛰어나다. 아버지 진어사가 반역죄로 몰리는 바람에, 노비로 전락하는 고초를 당했고, 곧 예쁜 외모 덕에 황궁에 들어왔고, 황후의 극진한 총애를 받게 된다. 글솜씨가 뛰어나 여중서가 되어 궁중의 문서를 맡아보는 일을 하였고, 난양공주가 그 재주를 매우 사랑하여 정이 골육과 같아 잠시도 떨어지기 싫어하였다. 

외모 : 양소유가 처음 진채봉을 만났을때의 묘사이다.
"그 미인의 구름 같은 머리가 귀밑까지 드리웠고 옥비녀는 반쯤 기울어졌으며 아직 봄잠이 부족해 하는 모습이 하도 천연스럽게 아름다워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고 비슷하게조차 그릴 수 없었다."

양소유와의 사랑 -
양소유가 15세 되어 과거를 보러 향하는 도중 무성한 수양버들 사이로 작은 누각이 는 아름다운 곳을 발견하고는 그 곳에서 버드나무를 예찬하는 시 한수를 지어 읊었다. 그 때 누각 안에는 마침 아름다운 여인이 자고 있었다. 소유의 시 읊는 소리에 여인은 잠에서 깨어 창을 열고 난간에 의지하여 섰다가 소유와 눈이 마주쳤다. 이 여자가 바로 진채봉이다. 소유의 시를 사모하게된 진채봉은 시 한편을 써 유모를 통해 소유에게 전달하였고, 소유 역시 답시를 적어 그 마음을 받았고 둘은 혼인을 약속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문학작품에서 그러하듯이, 세상은 이 둘의 사랑을 그대로 놔두지 않는다. 전란이 일어나고 전쟁이 참화가 지나간 뒤, 양소유가 진채봉을 찾아갔을 때는, 이미 그녀의 모습은 간데 없고, 진채봉의 가족은 역적으로 몰려 노비로 전락했다는 소식만을 듣게 된다. 서로 소식을 몰라 죽은줄로만 알았다가, 소유가 과거에 급제하여 천자와 더불어 여러 여중서들에게 시를 지어 주었을 때 그가 전일의 약혼자임을 알게 되고, 난양이 소유에게 시집 갈 때 잉첩으로 따라서 소유에게 왔다.

  2) 계섬월 - 제5부인

특징 : 적경홍과 더불어 당대 최고의 명기로 알려진 기생이었다. 진채봉과는 진어사가 낙양에서 벼슬할 때 서로 사랑하며 아끼던 사이였다. 진채봉이나 적경홍과의 친분, 그리고 정경패를 양소유에게 천거하는 등의 모습으로 보아 재능있는 여자들을 두루 사귀어 인간관계가 좋고 특별히 양소유의 사랑을 얻는데 있어 시기심도 없는듯 하다. 자신은 기생이기에 첩실 신분 뿐임을 잘 알기에 정경패를 정실로 추천할 정도로 현실적인 면도 있다.

외모 : 양소유가 처음 만났을 때, 
"양생이 눈을 들어 모든 창녀를 보니 이십여 인이 모두가 맡은 바가 있었지만 한 사람만이 홀로 단정히 앉았는데, 용모가 아름다워 참으로 국색이어서 마치 요대 선녀가 인간세상에 내려온 듯 하였다."

양소유와의 사랑 -
전란으로 인해 과거가 다음해 봄으로 연기된다. 소유는 고향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옛 서울 낙양에서 갑자기 소나기를 만나 술집으로 비를 피한다. 마침 그 곳에서는 여러 소년들이 시 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양소유 역시 그 자리에서 시를 적어 다른 소년들의 시를 누르게 되었다. 이 자리에는 당대 최고의 기생으로 유명하던 계섬월이 있었고, 계섬월은 양소유의 시에 반한 계섬월은 그를 자기 집으로 모셔 연분을 맺게 된다. 계섬월은 소유에게 정경패를 추천한다.

  3) 정경패 - 제 1부인

특징 : 사도의 딸이지만 황후의 양녀가 되어 영양공주로 봉해졌다. 음율과 가락에 조예가 깊고, 재기와 기지가 넘친다. 시비 가춘운과는 친자매처럼 자랐고, 서로 말하지 않아도 속마음을 읽을 정도이다. 자존심이 강해 양소유에게 속은 것을 분하게 여기며 복수한다.

외모 : 양소유가 처음 만났을 때
"태양이 아침에 솟아 오른 듯, 연꽃이 물이 비꼈는 듯, 눈이 어지럽고 정신이 아찔하여 가히 헤아릴 수가 없었다."

양소유와의 사랑 -
계섬월의 추천을 받은 양소유는 꾀를 내어 여관(女冠)으로 변장하고 정사도의 집에 찾아간다. 정사도 부부와 정경패 앞에서 여러 노래들을 연주하다가 마지막 아홉번째 봉구황을 연주한다. 봉구황은 사마상여가 탁문군의 마음을 도드리던 곡이었다. 이 곡을 듣고서 바로 소유가 여자가 아닌 남자임을 간파한다. 후에 양소유가 과거에 장원하고 정사도의 사위가 되자, 전에 속은 일을 분하게 여기며 가춘운을 귀신으로 만들어 복수를 한다. 소유가 난양의 부마로 간택되자, 시비 가춘운과 더불어 평생 독신으로 살 작정을 한다. 난양의 덕택으로 황후의 양녀가 되어 영양공주로 책봉되고 양소유의 제1부인이 된다.

  4) 가춘운 - 제 4부인

특징 : 정사도 집안의 시녀였지만 여러서부터 정경패와 함께 자라며 친자매처럼 다정하다. 친자매 같은 정경패가 양소유에게 시집가게 되자, 정경패와 한 남편을 섬기고 싶어하는 마음을 품는다. 

외모 : 양소유의 첫인상
"양생이 그 여자를 보니 몸에는 홍초의를 입었고 머리엔 비취 비녀를 꽂았으며 허리엔 흰 옥으로 된 패물을 찼는데 선연하고 표묘하여 참으로 신선같아"

양소유와의 사랑 -
정사도 집안의 시비였지만 어려서부터 정경패와 함께 자라며 친자매 처럼 다정하다. 친자매 같은 정경패가 양소유에게 시집가게 되자, 자신도 함께 따라가기를 원한다. 정경패의 기지로 양소유에게 속은 정경패의 복수를 대신 하여주며 양소유와 인연을 맺게 된다. 
처음에 가춘운은 자신을 선녀라 속이고 양소유와 하루 잠자리를 함께 한다. 그리고 여러날 뒤에는 다시 본래는 선녀가 아니라 귀신이었다고 하며 다시 소유와 인연을 맺게 된다. 이때부터 줄곧 소유를 가까이에서 모시게 되었고, 소유가 자신이 속은 것임을 깨닳은 뒤에도 그를 모시게 된다.

  5) 적경홍- 제 6부인

특징 : 계섬월과 함께 당대 최고의 명기로 불리운다. 

외모 : 양소유의 첫인상
"소년을 보니 용모의 수려함이 반악같고, 비록 위개의 맑음이라도 더 낫지 못할 듯해"
"푸른 눈썹과 맑은 눈, 구름 같은 머리와 꽃 같은 보조개, 가는 허리와 나약한 모습은 섬랑과 비슷해 보였지만 섬랑은 아니었다."

양소유와의 사랑 - 
연왕이 난을 일으키자 소유가 연왕의 항복을 받기 위해 길을 떠나게 된다. 연왕의 항복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소유는 예쁘장하게 생긴 소년이 한필의 말을 타고 오는 것을 만난다. 이 소년이 바로 남장을한 적경홍이었다. 연왕을 피해달아나기 위해 남장을 한 것이다. 양소유는 도중에 또한 계섬월을 만나게 되고, 그녀와 잠자리에 들게 되었지만, 다음날 일어나 보니, 함께 있는 사람은 계섬월이 아닌 적경홍이었다.

  6) 이소화(난양공주) - 제2 부인

특징 : 황후가 아끼는 황제의 동생이다. 황후가 낳을 때 태몽으로 신선의 꽃과 붉은 진주를 보았다. 자라면서 용모와 기질이 신선 같아 세속의 태도는 한 점도 없고 문장과 여공(女工)이 일마다 남들보다 뛰어났다. 난양이 퉁소를 불면 매번 학이 내려와서 춤을 추곤 하는 것을 태후가 기이하게 여기고 특별한 부마를 얻어주기 위해 나이가 들어도 시집을 보내지 않고 있었다. 

외모 : 
"공주가 자라면서 용모와 기질이 신선 같아 세속의 태도는 한 점도 없고 문장과 여공이 일마다 남들보다 뛰어났다."

양소유와의 사랑 -
소유가 한림학사가 되었을 때, 술을 마시다가 여흥에 옥퉁소를 불자, 난양의 퉁소와 더불어 춤추던 청학 한 쌍이 공중에서 날아와서 춤을 추었고, 이를 알게된 태후는 소유의 인물됨을 기뻐하며 난양의 부마로 삼고자 결정한다. 그러나 이미 정경패와 혼약을 맺은 양소유는 이를 거부하고, 옥에 갇히기 까지 한다. 태후와 황제가 강제로 정사도와의 혼약을 깨려고 하자, 이는 도리에 어긋난다며 적극적으로 만류하고는 정경패도 함께 양소유와 결혼하게 하자고 말한다. 정경패가 용모며 재덕이 자신보다 더하다면 일생토록 우러러 섬길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신 마음대로 하겠다며, 신분을 속이고 정경패를 만나본다. 결국 그녀덕에 정경패는 황후의 양녀로 들게 되어 영양공주가 되었고, 기꺼이 양소유의 제2부인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7) 심요연 - 제 7 부인

특징 : 어렸을 때 부모를 잃고 여자도사의 제자가 되어 검술을 배웠다. 여자도사는 요연의 인연이 당나라에 있다고 하여, 그인연을 맺어주려고 검술을 가르쳤다. 

외모 : 양소유의 첫 인상
"구름 같은 머리를 높다랗게 올려 묶고 금비녀를 꽂았으며 좁은 소매 전포에는 석죽화를 수놓았고 마치 봉의 머리처럼 수놓은 신발을 꿰고 허리에는 용천검 갑을 차고 있는데, 자연 그대로의 절색이었다. 마치 한송이 해당화와도 같았고, 마치 종군한 목란이 아니면 금합을 훔치던 홍선인 듯하였다."

양소유와의 사랑 -
양소유가 토번을 정벌하기 위해 나섰을 때, 토번국의 자객이 되어 양소유를 죽이러 오게 된다. 요연의 스승인 여자도사는 양소유가 요연의 인연이라고 하며, 토번국의 자객이 되어 소유에게 접근하여 인연을 이루도록 하였고, 결국 칼을 차고 소유의 진중에까지 들어오게 된다. 그날밤 바로 소유와 인연을 맺었고, 토번국을 이기도록 도움을 준다.

  8) 백능파 - 제 8부인

특징 : 동해 용왕의 딸이다. 남해용왕의 아들 오현의 청혼을 거절한 덕에 많은 핍박을 당한다. 가문 전체가 욕을 당할 것을 두려워 홀로 오랑캐 땅에서 생활하다가 양소유를 청하여 인연을 맺고자 한다. 

외모 :
 "여자의 아름다운 모습은 신선과 같고 입은 옷의 화려함은 세상에 없는 것이다."

양소유와의 사랑 - 
남해 용왕의 아들 오현이 청혼을 하지만 탐탁지 않게 여기자 백능파의 아버지인 동해 용왕을 괴롭힌다. 양소유는 물이 없어 고생하던 중 꿈을 꾸고 그 중에서 백능파를 도와 남해 용왕의 아들을 물리친다. 꿈이 깬 후 백능파의 도움으로 물을 얻고, 승리하게 된다. 이렇게 그녀와 인연을 맺게 된다.


이상 8명의 여인 모두, 배경만 다를뿐 예쁜 외모와 글잘쓰는 재주, 성격등은 모두 비슷하게 나온다. 서로간에 아무도 질투하는 사람이 없고, 서로 형제의 의를 맺기까지 한다. 이는 옥루몽에서 보여지는 여인들의 모습에 비해서 생동감이 덜 느끼지는 한계가 보인다.


3. 양소유의 사랑 방식 

  1) 소유의 사랑은 적극적이지 못하다.
양소유가 여덟 여인과 인연을 맺음에 있어 양소유가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오로지 정경패와의 만남 한번 뿐이었다. 진채봉과의 만남은 진채봉이 먼저 시를 보내왔고, 계섬월은 소유의 시를 보고 섬월이 자신의 집으로 모신 것이고, 가춘운은 정경패가 소유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적경홍은 계섬월의 기지에 의해서 인연을 맺게 되었다. 심요연 역시 요연 스승의 분부대로 요연이 먼저 찾아온 것이었고, 백능파 역시 그녀가 먼저 소유를 청하였다.

  2) 소유는 여자에게 약하다.
양소유는 자신에게 다가온 모든 여자를 단 한번도 마다하지 않는다. 과거를 보러 가는길에, 과거 시험 준비에 바쁠 사람이, 두 번다 여자를 만나 인연을 맺는다. 다가오는 여자들이 귀신이던, 선녀이던, 용왕의 딸이던 상관하지 않고 모두 받아들인다. 심지어는 토번을 정벌하기 위해 출전했을 때, 진중으로 심요연이 찾아오자, 그녀를 받아들이고 삼일동안을 헤어나오지 못하였다. 물론 그와 인연을 맺은 여자들이 모두 절대 미색을 갖춘 이들이었다고는 하지만 그가 여자에 약한 것 만은 사실이다.

  3)그렇다면 소유는 마마보이?
소유가 아기였을 때, 그의 아버지 양처사는 갑자기 신선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그 뒤로 과거길을 떠나기 까지 소유는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그런 그에게 어머니는 무척이나 큰 존재였을 것이며, 결코 이길 수 없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어렸을 때 신동이라고 조정에 천거되었지만, 어머니를 떠나기 어려워 나아가지 않은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이다.
이런 그의 가정환경이 결국 그를 여자에게 약한 성격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이런 그의 성격은 흐드러지게 호화스러운 술자리에서도 나타난다. 월왕으로 인해 대취하게 된 것을, 짐짓 장난으로 난양공주가 월왕과 공모하고 자신을 취하게 만들었노라며 어머니로 난양에게 벌주를 내려달라고 말하며 시작되는 술자리에서 어머니와 여덟 부인들에게 둘러싸인 그의 모습을 보게 된다. 

4. 양소유가 정말 사랑한 여자는 누구였을까?

  1)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
양소유가 정말로 사랑한 여자가 누구였을까 하는 점에서 정경패와 진채봉을 놓고 많은 고민을 하였다. 진채봉은 양소유가 만난 첫사랑이었다. 소유를 가장 가까이에서 모신 가춘운의 증언에 의하면, 가슴아픈 이별 뒤에, 늘 양류사 시를 몸에 간직하고 잠시도 떼지 않으며 항상 진채봉을 이야기할때마다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러나 진채봉과 누각에서 시로 인연을 맺고, 다음날 만나기로 약속하였지만 갑작스럽게 전란이 일어나 양민이나 천민 가리지 않고 군사로 충당한다는 말에 진채봉과의 만남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기 몸부터 피하고 본다. 전란이 끝난 뒤 진채봉을 찾아보지만, 그녀의 집은 이미 액을 당하고 노비로 팔려갔다고 했다. 이 시점에서 소유의 마음이 동했던 것 같다. 온 가족이 액을 당하고 순식간에 어사딸에서 노비로 전락해버린 진채봉의 신세가, 갑작스레 떠난 아버지로 인해, 홀로 자식을 키워야 했던 어머니와 동일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자연히 그의 마음은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그녀를 노비로 만들어 버리고 두사람의 사이를 갈라놓은 전란에 대한 안타까움과 원망이 섞여 늘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어머니의 영향으로 인한 상처였을 뿐이다.

  2) 단 한번의 적극적인 사랑 !
마마보이 소유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던 것일까? 물론 계섬월이 그녀를 천거하기는 했지만, 의외로 소유가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며 여관(女冠)으로 변장을 하고 정경패를 찾아가 구애를 한다. 이는 천하의 명기 계섬월을 차지했던 경험에서 나오는 자신감과 바로 그 계섬월이 천거한 여자라는데 대한 믿음이 같이 발동했던 것이다. 막상 대면하여본 정경패의 모습은 계섬월의 천거대로 아름다웠고, 음악과 문예에 조예가 깊었고, 또 소유를 속일 정도로 재기넘치는 여자였다. 그가 사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여자였다.(물론 8명의 여인 모두가 부족함은 없지만....)
그런데 또한번 의외의 어려움을 만나게 된다. 황후가 그를 부마로 낙점하면서, 거의 폭력에 가까운 만행으로 정경패와의 사이를 갈라 놓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전에 전란 가운데 진채봉을 지키지 못했던 양소유는 두 번의 실수를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정경패를 지키기 위해서 죽기를 무릎쓰고 황후와 천자의 뜻을 거절하고 옥에 갖히기까지 한다.
얼마나 기구한 사랑인가? 다시한번 전란이 일어나고, 이번엔 대원수가 되어 전쟁에 나가며 그녀를 남겨두게 된다. 얼마나 마음이 안타까웠을까? 다시한번 진채봉과 같은 경우가 될 것만 같았다. 그러다 보니 꿈에서까지 정경패가 죽는 꿈을 꾼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돌아갔을 때, 정말로 정경패가 죽었다는 것이다. 결국 황후가 맺어주는 공주들과 결혼식을 올리는 소유, 그런데 죽은줄 알았던 정경패가 영양공주가 되어 살아있을 줄이야...
정경패는 유일하게 그가 적극적으로 구애하고 또 지켜낸 사랑이다. 그의 사랑은 황제도 죽음도 갈라 놓을 수 없었던 목숨걸고 지켜낸 사랑이었다.
그래서 양소유가 정말로 사랑한 인물은 정경패라고 보았다. 진채봉은 가련함과 측은함에 정을 두었던 것이고, 다른 여인들은 여인들이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뿐이다. 양소유가 정말 목숨을 걸고 지켜내며 사랑한 인물은 정경패였다. 




아래의 시는 주인공 양소유가 진채봉과 처음 만났을 때 서로 읊어주었던 시 "양류사"입니다. 처음 이 시를 읽었던 중학생 시절 나로 하여금 고전문학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들었던 바로 그 키워드 같았던 시였지요.

<양류사((楊柳詞)>

- 양소유가 읇조린 시 
楊柳靑如織 양류 푸르러 짜는 것 같으니 
長條拂畵樓 늘어진 가지 구름 누각에 떨쳤더라. 
願君勤栽植 알고 싶건대 그대 부지런히 심은 뜻은
此樹最風流 이 나무가 가장 풍류 있음이리라 
楊柳何靑靑 양류가 어찌 이리 푸르를꼬!
長條拂綺楹 늘어진 가지가 비단기둥에 떨치었도다
願君莫漫折 바라건대 그대는 휘어잡아 꺽지 말라
此樹最多情 이 나무가 가장 정이 많음이로다.

- 진채봉이 지은 시
樓頭種楊柳 누각 머리에 수양버들 심었음은
擬繫卽馬住 낭군의 말 매어 머무르게 함이거늘
如何折作鞭 어찌하여 꺾어 채를 만들어,
催下章臺路 재촉하여 장대(章臺)길을 향하는고

- 양소유가 답한 시
楊柳千萬絲 수양버들 천만 실이
絲絲結心曲. 올마다 마음 굽이 맺히었도다
願作月下繩, 바라건대 달 아래에 놋줄을 지어
係定春消息. 좋이 봄소식을 맺으리라

<일신서적, 신동호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