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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가 머무는 찻잔

시 - 숲의 시작



메마른 사막 같던 그 곳에 나무 몇 그루 심겨질 때는

아무도 그 작은 나무들이 숲의 시작이었음을 알지 못했지

자그마한 나무가 땅 밑으로 뿌리를 내리고 양분을 빨아 들이면서

가지가 자라고 가지에 잎사귀가 돋고 그 잎사귀 위에 벌레가 살고

벌레를 따라서 산새 몇 마리가 날아올 무렵에야

비로소 사람들은 그 곳에 푸른 숲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어느 날 사람들이 나무 몇 그루를 베어 가기 시작했어

넓푸른 숲에서 그저 나무 한 그루 정도일 뿐 이었어

처음에는 한 그루씩, 다음에는 두 그루씩 그렇게 여러 나무들이 베어지고

어느새 그 곳에는 잘려 나간 나무들의 흔적만 덩그라니 남게 되었지

그제서야 사람들은 자신들이 베었던 나무 한 그루가 바로 숲이었음을 알았어

처음에 나무 몇 그루 심겨지면서 그 곳에 숲이 생겼고

그 숲에서 자신들이 그늘을 얻고 쉼을 얻었던 때를 기억한거지

이제 사람들은 다시 그 곳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어

황량한 나무들의 무덤 같던 그 곳에 나무 몇 그루 심겨진 뒤에는

단지 몇 그루 나무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작은 나무 몇 그루가 바로 숲의 시작이라는걸 알았으니까

- 야기꾼 시(詩) - '숲의 시작'

  2007년 감리교신학대학교 학보사 문예공모 당선작



어린 시절 제가 살던 동네에는 유난히 민둥산이 많았습니다. 나무 한 그루 없이 삭막하기만 했던 그 산들은 마치 사막같이 또는 무덤같이 황량하기만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해마다 식목일이면 주변의 모든 학교 학생들이 그 민둥산에 나무를 심는 일이 커다란 행사였습니다. 꽤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난 요즈음, 그 동네를 다시 찾아가면 어린 시절 그토록 자주 보았던 민둥산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고, 천지에 온통 푸르고 푸른 산들이 가득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많은 일들을 접하면서 민둥산 같은 제 마음을 자주 느끼고는 합니다. 어느새 사람보다는 일을 바라보는 제 모습,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인원을 모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가득 찬 제 모습을 느낄 때면 저는 늘 어린 시절 보았던 그 민둥산이 생각납니다. 내 마음이 이렇게 사막 같고 또 무덤 같구나 하고 느끼게 되면, 어떻게 하면 이 민둥산에 다시 푸른 나무들을 심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교회에서 소그룹 하나를 섬긴 적이 있었습니다. 그 소그룹의 이름을 ‘숲’이라 정하게 되면서 그 ‘숲’의 시작을 기념하고 축하하기 위하여 ‘숲의 시작’이라는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아직 시작 단계였기에 채 몇 명 되지 않았던 그 작은 모임, 거창하게 ‘숲’이라고 이름 붙였음에도, 사실 울창한 숲 보다는 들판에 나무 몇 그루 듬성듬성 서 있는 모습이 그 작은 모임을 묘사하기엔 더 적당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듬성듬성 서 있는 그 나무 몇 그루가 바로 울창한 숲을 만드는 시작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그 나무 몇 그루 옆에 다른 나무 몇 그루를 더 심고, 그 나무에서 뻗은 가지가 푸른 잎사귀들을 바스락거리며 흔들어댈 때에, 몇 명 되지 않는 작은 모임인 ‘숲’이 하나님 앞에서 풍성한 모임으로 자라날 것을 기대하고 싶었습니다.


어떤 대단한 프로그램으로, 어떤 유별난 행사로 떠들썩한 모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숲에 찾아온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보듬어 품고 나아가는, 누구나 품어 줄 수 있고, 누구나 쉽게 찾아와 쉬어 갈 수 있는 그런 숲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제 마음도 그런 숲이 되고 싶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게 다가오는 울창한 숲 같은 만남들을 세워가고 싶습니다. 그 숲을 보살피며 지켜가는 작은 산지기 같은 모습으로 준비되고 싶습니다.


- 2007년 감리교신학대학교 학보사 문예공모 당선 소감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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