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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숨쉬는 책장

여행에서 길을 잃다.



1. 길을 잃어버리다.

몇해 전 미국을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 몇개 도시의 대학, 기업, NGO 등을 견학하는 필드 스터디의 일정이었지요.  3주간의 여행 중 그 마지막 도착지는 시카고였습니다. 뉴욕과 워싱턴 D.C. 보스턴을 거쳐 시카고에 이르렀을 즈음에는 이제 어느새 여행에 익숙해져 처음 미국 땅을 밟았을 때 느꼈던 두려움과 걱정 따위는 사라져버리고, 여행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아쉬움만 남아 있었습니다.

시카고의 일정도 어느정도 익어갈 무렵 휘튼 칼리지를 방문했습니다. 본래 목적은 그 곳에 위치한 빌리 그래함 센터에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함께 한 동료 들이 빌리 그래함 센터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혼자 몰래 그 곳을 빠져 나왔습니다. 휘튼 대학, 95년이던가요? 휘튼 칼리지를 휩쓸었던 부흥의 열기에 관한 소식에 가슴 설레여 하던 20대 시절을 기억하는 나는 그 부흥의 여파가 휩쓸었던 장소를 직접 가보기 원했습니다.  그 부흥의 잔향이라도 맡아보겠노라는 욕심에 한참 대학 캠퍼스를 돌아다녔습니다.

인적 없는 강의실에도 들어가보고 이런 저런 박물관이나 조형물들도 구경했습니다. 대학 북스토어에도 들러 책 몇권을 구입했고요. 얼마 남지 않은 여행 경비를 털어서 산 책 몇권을 들고 기분 좋게 북스토어를 나오는 순간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분명 맑게 개인 하늘이었는데 단 30여분 전에 대한 내 기억을 비웃듯이 폭우가 쏟아지고 있더군요. 안경 벗으면 한치 앞도 보지 못하는 제 기능을 한참 다 못하는 눈을 지닌지라, 그 안경이 역시 제 기능을 못하게 만드는 폭우 속에서 나는 그만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길을 잃었던 이유는 분명합니다. 첫째, 나는 미국의 대학 캠퍼스도 한국의 대학과 마찬가지로 외부와 학교의 경계가 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둘째, 그 당시 비록 영어권 국가는 아니었을지라도 이미 한번의 해외 체류 경험을 갖고 있었습니다. 비록 영어 한마디 못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길을 잃지는 않을 거라는 자신을 갖고 있었던 거지요. 셋째, 나는 주변 거리의 전체적인 모습을 그리며 길을 찾지 않았고 단지 당장 눈앞에 보이는 길을 느낌으로만 찾아 다녔습니다.

2. 담장 밖으로 나가기

휘튼 칼리지를 돌아다닐 때 난 내가 다녔던 한국의 대학처럼, 그리고 내가 구경했던 여러 대학들 처럼 휘튼 칼리지도 외곽지역과 캠퍼스가 담으로 일정한 경계가 지어져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빗 속에서 한참을 헤매다 보니 나는 어느 이름 모를 주택가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 곳은 학교의 주변 주택가와 대학 캠퍼스의 경계가 분명하게 그어지지 않은 담이 없는 학교였던거지요. 그래서 길을 잃어봤자 학교 안에서만 돌아다니다 보면 금새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했던 내 막연한 생각은 옳지 못했습니다.

그  여행을 떠나기 전 내가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분히 편향되어 있었습니다. 어린시절 기지촌 문화 속에서 자랐던 경험이 있는 나로선 미군과 미국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다분히 많이 지니고 있었습니다.  내 어린 시절의 미군들과 그들의 횡포는 과히 좋은 기억이 아니었으니까요. 미국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에는 그런 어릴 적 경험이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지습니다. 어릴 적 내가 보았던 미군들의 모습으로 미국의 전부를 비추어 비판하곤 했던거지요.

짧은 3주간의 여행 동안에 나는 그런 나의 미국에 대한 시각이 얼마나 편향되고 짧은 생각이었던 가를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우물 안에서 하늘을 이야기하던 개구리처럼 한국 안에 갇혀서 미국과 세계를 바라보며 떠들던 내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워습니다. 미국은 흔히 세계 제일의 선진국이라고 불리우기에 전혀 어색함이 없는 나라더군요. 그리고 우리가 여행했던 뉴욕과 워싱턴 D.C. 보스턴, 시카고 등이야말로 그런 미국의 중심 중 중심이라고 할만한 도시들이었습니다. 여러명의 교포들, 유학생들, 그리고 미국인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국에서는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던 우물 밖 하늘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집 안에 숨어 있으면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의 모습을 알지 못합니다. 지붕은 어떤 색깔인지, 누가 집 담벼락에 낙서를 해놓지는 않았는지, 집 안에서만 숨어 있으면 볼 수 없는 법이지요. 나는 한국이라는 담장 안에 숨어서 조그맣게 난 구멍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이야기했고, 그래서 밖에서 바라보는 한국이, 밖에서 바라보는 내 모습과 위치가 어떠한지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던겁니다.


3. 경험과 인식의 벽을 허물기

2002년도에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에서 6개월 가량을 선교 목적으로 체류한 적이 있습니다. 간단한 카작어나 러시아어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면서 무작정 갔더랬습니다. 몸으로 부딪히며 경험하고 또 극복했던 모든 어려움들은 많은 부분에서 나를 성장시켰습니다. 그래서 나는 미국에서도 자신이 있었습니다. 말 한 마디 제대로 할 줄 모르면서 카작의 시내를 마음대로 돌아다녔던 것 처럼, 영어 한 마디 못해도  자신 있었습니다. 미국에 처음 가본 거였다고 해도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설령 길을 잃어도 쉽게 사람들에게 물어서 찾을 수 있으리라고 자신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내리는 폭우 속에서 안경이 젖어버려 제대로 앞을 볼 수 없었습니다. 또 그 빗속에서 나처럼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나는 돌아갈 길도 그 길에 대해 물어볼 사람도 아무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미국 여행은 하나의 값진 경험이 되어주었습니다. 여러 도시에서 만나는 사람들, 학교, 정부기관, 다국적기업, 교회 등등을 통하여 많은 것들을 배우고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뉴욕 브로드웨이가 어떤 곳인지, 하버드와 MIT라는 두 명문 대학이 얼마나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는지, 그 곳에서 한인들과 유학생들의 삶이 어떠한지를 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한 새로운 경험과 배움은 내 머리와 가슴 속에서 점차로 넓어지고 커져갔습니다.
 

그런데 이 경험과 인식이 좀 더 커지기 위해선 벽이 허물어져야 합니다. 지나치게 과거의 경험에 안주하고 과신하는 것은 경험과 인식을 벽 안에 가둬두는 일입니다. 우리의 경험과 인식이 자라나기 위해서는 그 벽을 허물고 더 넓게 새로 만들어야 하는거지요. 카자흐스탄에서의 경험으로 미국을 판단할 것이 아니라, 카자흐스탄에서의 경험에 미국의 경험을 덧붙여 더욱 크고 넓은 경험과 인식을 배워나가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4. 좀 더 크게 그려보기

나는 좀 심각한 길치에 방향치입니다. 자주 다니던 익숙한 길에서도 쉽사리 길을 잃은적도 많습니다. 사실 대부분 내가 길을 잃는 이유는 내 고집 때문입니다. 한번 길을 걷기 시작하면 좀 길이 이상하다 싶어도 무작정 계속 걷는거지요. 잠시 멈추어 서거나 뒤돌아서 이 길이 옳은 길인지를 다시 파악해본 후에 걸어야 하는데도 나는 무작정 계속 앞으로만 걸어갑니다. 그나마도 내가 보는 시선은 짧고 좁습니다. 내 눈 앞에 보이는 몇 미터 안되는 길 만을 바라보고 생각할 뿐, 내가 걸어온 길들과 걸어갈 길 그리고 주변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 주변의 전체적인 윤곽과 길을 그려보지 않습니다. 조금만 사고를 확장 시키면 되는 일을 귀찮게 생각하며 앞으로만 걸어가지요. 그래서 나는 쉽게 길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미국 여행 동안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세계의 중심으로 나오라”라는 말이었습니다. 좁은 한국 땅에 갇혀 지내지 말고 세계의 중심인 미국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정말 미국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카자흐스탄에서 생활할 때 나는 그곳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하루 세끼 먹을 돈이 없어서 한두끼 정도만으로 생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기도 제대로 공급 받지 못해서 산에서 나무를 해와서 겨울을 나는 도시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여유 있는 조크로 미국 중심의 세계에 대해 비판하고 벗어나려 노력하던 이들을 보았습니다. 미국에서, 그 중에서도 북동부의 대도시만을 돌아다니며 온갖 좋은 것들만을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 곳이 세계의 중심이다 라고 수긍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의 경험들 때문입니다.
 

우리의 눈이 닿는 시야는 얼마되지 않은 공간이지만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는 그보다는 훨씬 넓고 큰 땅입니다. 카자흐스탄을 보았다고 미국을 보았다고 세계를 보았노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본 카자흐스탄이, 내가 본 미국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내가 갔던 그 미국 여행은 대부분 사회, 문화, 경제, 교육 다양한 분야에서 화려함을 드러내는 곳들을 돌아다녔습니다. 뉴욕의 증권회사와 타임 스퀘어와 브로드웨이를 갔지만 흑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위험한 할렘가는 가지 않았습니다. 워싱턴의 정부기관과 NGO를 구경하지만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긴채 인디언 보호구역 안에 갇혀 있는 그 땅의 원래 주인이었던 이들은 볼 수 없었습니다 . 미국은 사회, 경제적인 부분에서 우리보다 훨씬 발전된 땅이고 그 안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겠지, 결코 우리가 보고 경험하고 배우는 것들이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5. 길 떠나기

빗속에서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매이다가 문득 지나가던 차가 한대 멈추어 섰습니다. 왠 동양인 남자가 내리는 비를 홀딱 맞고 거리를 헤매고 있으니 불쌍해 보였나 봅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운전자에게 다짜고짜로 “나는 한국에서 왔는데 함께온 팀과 헤어져 길을 잃었다. 그들은 빌리 그래함 센터에 있다. 나를 빌리그래함 센터까지 태워달라”는 긴 말을 무척이나 짧은 영어와 다급한 몸짓으로 설명했습니다. 다행히 마음씨 좋은 그 운전자 덕분에 빌리 그래함 센터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뒤로 또 몇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뒤로 또 여러 많은 경험들을 하고 여러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짧은 3주간의 여행이 아니라 1년이 넘는 시간동안 미국에서 체류하며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여전히 심각한 길치에 방향치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자주 길을 잃습니다. 그 수많은 길 잃음의 경험들 속에서 또 여전히 나는 여러가지 경험들을 배우고 얻습니다. 길치이지만 그래서 길을 자주 잃지만 또 그래서 더 쉽게 담장 밖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내 경험과 인식의 담을 허물고 좀 더 큰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것도 다 길을 잃는 경험들 덕분입니다.

이제 또다른 길을 떠나고 또 다른 길을 걸으면서
나는 여전히 길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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