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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숨쉬는 책장

장미꽃을 꺽으라

Vieillesse                                                                                      

(Sonnet pour Helene)                                                                     

                                                        - Pierre de Ronsard


Quand vous serez bien vieille, au soir a la chandelle        

Assise aupres du feu, devidant et filant,                           

Direz chantant mes vers, en vous emerveillant:                

<Ronsard me celebrait du temps que j'etais belle.>          

 

Lors vous n'aurez servante oyant telle nouvelle             

Deja sous le labeur a demi sommeillant,                       

Qui au bruit de mon nom ne s'aille reveillant,                  

Benissant votre nom de louange immortelle.                  

 

Je serai sous la terre, et fantome sans os                      

Par les ombres myrteux je prendrai mon repos;              

Vous serez au foyer une vieille accroupie,                     


Regrettant mon amour et votre fier dedain.                      

Vivez, si m'en croyez, n'attendez a demain:                 

Cueillez des aujourd'hui les roses de la vie.                  

                                                                                 


       늙어짐

       (엘렌느에게 바치는 소네트)

                                                        - 피에르 드 롱사르

 

그대 늙어 저녁 촛불 아래,

불가에 앉아 실 뽑고 감을 때,

나의 노래 읊으며 감탄하듯 말하리라 :

"롱사르는 내 아름다운 시절 날 찬미했었지."

 

이 때 일에 지쳐 반쯤 잠든 그대 시녀들도

이 소식 듣고,

불멸의 찬사로 그대 이름 축복한

나의 이름 소리에 깨어나지 않는 자 없으리라.

 

이미 나는 황천에 내려 뼈 없는 망혼이 되어

도금양(桃金孃) 그늘 아래 몸을 쉴 때

그대는 난롯가에 쭈그린 노파되어,

 

나의 사랑과 이를 뿌리친 그대의 교만을 뉘우치리다.

진정 그대에게 말하노니 오늘을 사시요 내일을 기다리지 말고:

꺽으시오 이 날부터 인생의 장미꽃을.



16세기 프랑스 시인 피에르 드 롱사르의 대표적인 시 '늙어짐' 입니다. 이 블로그에 프랑스어를 제대로 옮겨적기 힘든 관계로 정확한 원 문자를 옮겨 드리지 못하지만 그래도 왠만한 부호들을 빼고는 가깝게 적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프랑스어는 고등학교에서 3년, 대학교에서 두 학기를 공부했는데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아서인지 영 까막눈을 벗어나지 못하네요. 그래도 나름 고등학교때는 잠시나마 프랑스 시에 빠져 지낸 적도 있었습니다. 이젠 책상 구석에 먼지만 가득 쌓인 시선집(詩選集) 하나가 전부이지만요. 그 오래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펼친 시집 한 귀퉁이에서 오랫만에 읽는 시 한편을 올려 드립니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의 바람이 솔솔 불어오던 16세기 프랑스, 이 시기에 활동하던 대표적인 시인 중 한사람이 바로 피에르 드 롱사르 Pierre de Ronsard 입니다. 시골 귀족 가문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많은 기대를 받았지만 그만 자라나며 청각 장애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문학가로서의 꿈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꿈을 이루었고 앙리 2세에 의하여 1558년 그를 궁중 시인으로 임명되기도 했습니다.


모든 사랑하는 사람은 다 시인이라고 했던가요? 그는 여러명의 이름난 미녀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녔습니다. 그의 시 가운데 한번 찬미되면 그녀의 이름과 아름다움은 영원한 것이 되기 때문이었는지 뭇 미녀들이 그와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51세에 왕실시인의 자리에서 물러나 시골에 내려가 생활했는데 지병인 통풍을 앓으면서도 왕성한 시작(詩作)을 지속하면서 역시 사랑의 열정도 사그라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마리의 죽음을 애도하는 소네트> 이라던지 바로 위의 시 <엘렌느에게 바치는 소네트> 등이 바로 이 시기에 나온 작품입니다.

이 시에서 노래한 엘렌느는 카트린느 드 메디치(앙리 2세의 왕후)의 시녀로서 미모와 재덕을 겸비한 부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약혼자인 드 쉴제르 공이 내란 중에 전하하여 홀로 슬픔 속에서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요. 왕후는 롱사르를 불러 슬퍼하는 엘렌느에게 노래로 위로해 주라고 명했습니다.


처음에는 왕후의 명에 따라 위로차 만났으나 얼마 뒤에는 차츰 사랑이 싹터 두 사람은 연인이 됩니다. 문제는 이 당시 50대의 나이였던 롱사르에 비하여 엘렌느는 고작 20세였다는거죠. 아무리 약혼자가 전사했다지만 새파란 20세 아가씨가 50대 아저씨의 구애를 쉽게 받아주었을리는 없겠지요. 그래서 이 시 '늙어짐'이 나온것 같습니다. 자신의 사랑을 거절하면 늙어 후회할 것이라는 공갈협박이 담겨있는 이 시가 프랑스에서 가장 널리 알려지고 애창되는 시라고 하니 참 재미있습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시인이기에 수많은 프랑스인들에게 사랑 받는 시인이었고 또 장미와 사랑의 시인으로 불리운 것이겠죠. 실제로 그의 이름을 딴 피에르 드 롱사르 장미꽃도 있다고 하니 장미와 사랑의 시인이 맞네요.


중년이 훨씬 넘은 나이에 나어린 여인을 마음에 품고 게다가 자신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여인에게 자신을 거부하면 다 늙어 후회할거라고 협박까지 할 줄 아는 자신만만함과 뻔뻔함, 바로 그 당당함이 사랑의 정렬이 아닌가 싶습니다. "진정 그대에게 말하노니 오늘을 사시오 내일을 기다리지 말고: 꺽으시오 이 날부터 인생의 장미꽃을"이라고 노래하는 그의 싯귀를 듣노라면 30대의 날들을 살고 있는 야기꾼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네요.

 

스물 아홉의 마지막날 밤에 내 지나간 20대의 시간들을 돌아보며 왠지 내 젊은 날들이 아쉽고 서운했습니다. 왜 나는 꽃처럼 아름답던 스무살의 나날들을 얼치기 상념들과 고뇌의 포즈로 보내었던가 왜 좀더 아름답게 즐기지 못하였던가 정말 눈물나게 아쉽고 서러웠습니다. 신념이라는 것 하나에 목숨 걸듯 달려온 시간들이었는데 정작 내가 붙잡고 싶어했던 그 이상은 내가 무심코 지나온 그 날들이었습니다.


이제 삼십대의 날들도 벌써 몇 해를 살아오면서 여전히 나는 내 삶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아직은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는 나이인데, 아직은 더 많이 아름다울 수 있는 날들인데, 이제 나도 인생의 장미꽃을 꺽어야 겠습니다. 그냥 가만히 바라만 보는 장미가 아니라 그 장미의 아름다움을 누리기 위하여 꽃을 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침 시 한편 올려 놓는 김에 이  롱사르의 시와 상당히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김삿갓의 시 한편 덤으로 드립니다.

 

       贈某女(증모녀 : 어느 여인에게)
                                                                 - 김 삿갓 -

客枕條蕭夢不仁(객침조소몽불인)
나그네 잠자리가 너무 쓸쓸해 꿈자리도 좋지 못한데
滿天霜月照吾隣(만천상월조오린)
하늘에선 차가운 달이 우리 이웃을 비추네
綠竹靑松千古節(녹죽청송천고절)
푸른 대와 푸른 솔은 천고의 절개를 자랑하고
紅桃白李片時春(홍도백리편시춘)
붉은 복사꽃 흰 오얏꽃은 한 해 봄을 즐기네
昭君玉骨湖地土(소군옥골호지토)
왕소군의 고운 모습도 오랑케 땅에 묻히고
貴妃花容馬嵬塵(귀비화용마외진)
양귀비의 꽃 같은 얼굴도 마외파의 티끌이 되었네
人性本非無情物(인성본비무정물)
사람의 성품이 본래부터 무정치는 않으니
莫惜今宵解汝거(막석금소해여거)
오늘 밤 그대 옷자락 풀기를 아까워하지 말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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