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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숨쉬는 책장

자전거 이야기

자전거를 좋아합니다. 워낙 몸집이 커서 자전거를 타면 자전거가 많이 작아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전거에 올라서 힘껏 페달을 밟고 달리는 일이, 무엇보다도 내리막 길을 달릴 때 얼굴을 스치는 바람을 한껏 느끼는 그 순간이 참 좋아서 자전거를 자주 타는 편입니다.


두발 자전거를 처음 배운 것은 어릴적 아버지로부터였습니다.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아버지는 늘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 하시곤 했습니다. 아침이면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을 들고 자전거에 올라타는 아버지 모습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아버지처럼 두발 자전거가 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버지가 두발 자전거를 사주셨습니다. 한 대 밖에 없어서 늘 누나와 싸우곤 했지만 그래도 이제 두발 자전거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아버지처럼 멋지게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두발자전거는 세발자전거와는 다르게 정말 타기가 쉽지 않더군요. 그래서 아버지가 학교에서 돌아오시는 저녁이면 늘 누나와 나를 동네 초등학교로 데리고 가서는 두발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주셨더랬습니다. 자전거에 올라타서는 좌우 균형을 잡지 못해 기우뚱 하는 나를 자전거 뒤를 붙잡고 밀어주시던 아버지의 기억이 아직도 기억에 선합니다.


처음으로 내 발로 페달을 밟고 넘어지지 않은채 자전거로 달릴 수 있었던 날, 자전거를 꼭 붙들고 있겠다고 철썩같이 약속했던 아버지가 나 몰래 손을 놓은줄도 모르고 아버지가 자전거를 잡고 있겠거니 믿고 페달을 밟았던 그 때 한참을 달리다가 뒤에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 뒤로 늘 자전거는 제게 떼어놓을 수 없는 친구같은 존재였습니다. 동네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곤 했습니다. 어느날인가는 친구녀석들과 모의를 했습니다. 자전거를 탈 수 있으니 좀 더 먼 동네로 나가보자고 작정했습니다. 우리가 살던 동네에서 버스로 한 20분 정도 떨어진 읍내로 나가보고 싶었습니다. 그 무렵의 우리에겐 버스로 20분 떨어진 읍내는 미국보다 더 먼 동네였습니다.


너무 먼 길을 떠나는 일이어서 감히 어른들께는 말씀 드리지도 못한채 우리들끼리 비밀리에 감행했던 여행이었습니다. 이른 아침 - 그래봐야 아침 식사를 하고 난 조금 이른 오전 시간일 뿐이었지만 어린 친구들에게는 참 이른 시간 - 출발한 여행은 한참을 계속 되었지요.


그날이 여름 날이었던지 반바지에 샌들을 신고 있던 나는 자꾸만 페달을 헛밟을 때마다 페달에 종아리가 긁혀 피가 나곤 했습니다. 기껏해야 조금 긁히는 정도였지만 어린 제게는 마치 피가 철철 흐르는 것 같은 아픔이었고 또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래도 그 두려움도 아픔도 이겨내고 평소에 그렇게 가보고 싶었지만 결코 가 볼 수 없었던 미국, 그 미국 보다 더 멀게 느껴지던 그 읍내로의 여정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읍내에서 장을 보고 오는 어른들이 늘 사들고 오시던 이런 저런 맛있는 간식거리들 과일들 생각에 그랬는지, 아니면 아무리 울고 때를 써도 그곳까지 데리고 가지 않는 어른들이 미웠던지 조금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또 페달에 긁히면 아파서 울면서 또 걷다가 그렇게 한참을 나아갔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보니 어느새 아버지가 근무하시는 고등학교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 학교 정문이 저만치서 보이자 덜컥 겁이 났습니다. 여기까지 몰래 자전거 타고 나온걸 아버지한테 들키면 엄청 혼날텐데... 결국 페달에 긁힌 상처도 막지 못했던 우리들의 먼 여정은 아버지에게 혼날것 같다는 두려움에 그 자리에서 끝이나고 다시 자전거를 돌려 우리 동네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꼬마녀석들의 첫 가출모의는 끝이 났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출발했던 곳에서 그 고등학교까지는 어른 걸음으로 걸어도 10분이면 되는 짧은 거리였지만 어린날의 내 기억 속에는 몇시간은 족히 더 걸렸던 멀고먼 거리였습니다.


그 무렵 그렇게 가고 싶어했던 그 읍내가 이제 너무 가까운 거리임을 깨닫게 된 어른이 되어서야 그 읍내만큼 멀었고, 또 그 읍내만큼 가고 싶었던 미국이란 나라에 어학공부하러 갈 수 있었습니다. 미국 시애틀에서 어학연수를 핑계로 1년여를 지내면서 그곳에서도 자전거를 탔더랬습니다. 자동차 없으면 옴짝달짝 할 수 없는 자동차 필수의 미국 땅에서 그렇다고 자동차를 구입하고 가스비에 보험료에 감당이 안되더군요. 


물론 시애틀은 다른 미국의 도시들과 다르게 대중교통이 발달해 있어서 어디든 버스를 타고 갈 수 있었고 또 야기꾼이 다니던 학교 학생들은 학생증에 붙이는 U-PASS 만 있으면 카운티 안에서는 어디든 버스요금이 무료였지요. 하지만 아무래도 한국 만큼의 편한 대중교통 이용은 아무래도 힘들더군요. 결국에는 자동차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거리의 이동성이라도 확보하자고 큰 맘 먹고 구입했던 Pseudo MTB였지요.


시애틀 northgate에 위치했던 Target 매장을 한참 뒤져서 거금 140달러를 주고 구입했습니다. 안장이 좁길래 좀 넓직한 안장으로 갈아 끼우고 합법적으로 자전거를 타기 위해 자전거 헬멧도 구입하고 중간 중간 고장날 때마다 수리해주고 바퀴를 교체한적도 있기에 생각보다 이래저래 돈도 수월찮게 들었던 놈이었지요. 그래도 이 자전거를 타고 아침 등교길에 이어폰을 한쪽 귀에 꽂은채로 시애틀 North East 35th ave를 내리막길로 달리노라면 세상 부러울것 없었더랬지요.

 

수업이 끝나고 여유가 생기는 날이면 Burke-Gilman Trail을 달리면서 맘껏 운치도 즐겼고요. 이 Burke-Gilman Trail은 일종의 자전거 전용도로입니다. 시애틀이 호수가 많은 지형인데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호수였던 Lake Washington 변으로 길게 나 있던 이 길은 한쪽으로는 숲이 우거지고 또 한쪽으로는 호수가 펼쳐져 있어서 자전거를 타거나 조깅을 하기에 무척 좋은 길이었지요.


이 길을 가다보면 예쁘고 한적한 공원이 나올 때도 있고 호수가의 그림같이 예쁜 집들도 많고 나무로 만든 다리를 넘어 가다보면 어느새 Univ of Washington의 아름다운 캠퍼스와 만나게 되지요.학교 수업이 마치고 홈스테이하던 집까지 가려면 더 빠른 지름길이 있음에도 그 길이 참 좋아서 일부러 한참을 돌아서 가곤 했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또 때로는 천천히 걸으며 주변 경관을 구경하노라면 힘든 미국 생활도 나름 즐겁구나 하는 생각들을 했었습니다.



어느날인가 이 길을 자전거를 타고 지나다가 문득 훗날 내가 시애틀을 떠나고 났을때, 나의 시애틀 시절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머리 속에 이 길과 길 양편에 우거진 나뭇잎들과 그 나뭇잎들 너머로 보이던 호수의 잔잔한 물결이 가장 먼저 떠오르겠구나 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안타깝께 그 곳을 떠나오기 얼마 전에 그만 자전거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좀 거리가 있던 친구집 파티에 초대를 받은덕에 자전거를 학교에 두고 갔다가 다음날 찾으러 갔었지요. 그런데 자전거를 파킹해 놓았던 곳에는 자전거가 보이지 않더군요. 안되는 영어로 분실 신고도 하고 이리저리 찾아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진학때문에 다른 도시로 옮겨가도 그 놈만은 데려가고 싶었는데 그놈을 잃어버리고 나서 한참 동안 허망함을 달랬더랬지요.

 

한국에 돌아온 뒤로도 그놈 생각이 문득 문득 나곤 했습니다. 딱히 그 자전거가 그리웠다기 보다는 Burke-Gilman Trail을 자전거로 달릴때 내 얼굴을 시원하게 스쳐가던 바람이 많이 생각나서였지요. 서울에서는 자전거를 타기가 참 어렵지만 그래도 문산에서는 자전거를 자주 타는 편입니다. 문산이 나름 번화한 동네기는 하지만 아직은 자전거 탈 만큼 한적한 곳도 많거든요. 시애틀 Burke-Gilman Trail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한적한 동네 산책로를 자전거로 달리면서 Lake Washington은 아니지만 임진강 칼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면서 자전거로 달리노라면 참 팍팍한 어른 살이도 모두 바람 따라 날아가버리고 긴 자전거 여행을 떠나던 설레이던 꼬마로 돌아가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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